이강철 KT 감독이 지난 23일 스포츠경향과 만나 인터뷰 하고 있다. 박민규선임기자
프로야구 시상식이 줄을 잇던 12월의 어느날, KT 구단 한 프런트는 “우리 감독님이야말로 상 하나쯤 받으셔야 하는 것 아니냐”며 초청자로만 참석하던 이강철 KT 감독의 모습을 아쉬워했다.
올 것이 왔다고들 했다. 때를 기다린 듯 ‘준비된 감독’은 날개를 폈다. 언젠가는 감독이 될 것이라 모두가 예상했던 사령탑 이강철(53)의 데뷔 첫 시즌은 구단이 인정할 정도로 기대 이상이었다. 50대가 돼서야 감독이 됐지만 10여년의 코치 생활로 쌓은 경험을 유감없이 풀어낸 이강철 감독은 탈꼴찌 경쟁을 벗어나지 못하던 KT를 단숨에 5강 경쟁권으로 끌어올려 찬사를 받았다.
우승도 못 했고 결국 가을야구에 가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강철 감독과 KT가 보여준 2019년의 이야기는 스타 출신 사령탑이 점점 줄고 있는 프로야구에 매우 의미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사령탑 첫 시즌을 마치고 더 큰 가능성을 준비하고 있는 이강철 감독이 연말의 한가운데, 지난 23일 저녁 ‘스포츠경향’과 만났다. 치열하게 치러낸 올시즌의 소회, 내년의 희망, 그리고 감독이 된 야구인 이강철의 소망을 들어보았다.
■첫해, 기다림을 배웠다
4월에는 8연패를 했고, 5월초까지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다. 늘 시즌 초반 반짝 잘 달리다 하염없이 추락했던 KT가 올해는 초반부터 바닥을 헤맸다. 꼴찌 기운에 젖어있는 선수들을 깨우기란 역시 감독 첫해에는 무리인가 하는 시선이 쏟아졌다. ‘초보’ 이강철 감독은 버텼다. 원칙대로 투수들을 기용하며 자리잡기를 기다렸다. 부상이 쏟아졌다. 할만하면 주전들이 다쳐나갔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융통성 있게 움직여야 했다. 대체선발이던 배제성을 선발로 고정시키고 부상당했던 선발 이대은이 돌아오자 마무리로 바꾸는가 하면 강백호가 다치자 두말없이 백업 조용호를 주전으로 기용했다. 결국 부상은 KT의 상승세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최대한 다른 선수들을 흔들지 않으며 막아낸 고비들은 이제 내년까지 준비할 수 있는 힘으로 이어졌다.
‘초보’라면서도 ‘준비된 감독’이라는 별칭은 부담이 되기도 했다. 더 긴 시선으로 팀을 들여다보고 기다려야 했다. 이강철 감독은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올해 성적을 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올해는 성적에 대한 마음을 비운 채 주전을 찾고 선발을 만들고 투수 보직을 정리해 팀을 만드는 것이 내 목표였다. 내 마음 속에서 어느 정도 여유를 만들려고 해서인지 급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때가 왔다고 느끼자 과감한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다. 개막후 석 달이 돼 갈 무렵이었다. 6월16일 대구 삼성전에서 불펜 이대은을 연장 10회 접전 속에 3이닝이나 밀어붙였다. 시즌 초반에 비해 상승세를 타면서도 7~8위만 맴돌던 시점이었다. 이강철 감독은 “시즌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것과 경기를 포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선수들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봐야 내년에도 달릴 수 있기 때문”이라며 “팀을 만든다고 멍하니 1년을 보낼 순 없었다. 치고나가기 위해 선수들이 성취감을 느끼는 경기가 한 번은 필요했다. 처음으로 승부수를 띄운 게 그 경기였는데 사실 속으로는 내가 덜덜 떨었다”고 돌이켰다. 그 경기 승리로 6위가 된 KT 선수들은 창단후 처음으로 5강경쟁의 희망을 보았다.
이강철 KT 감독이 지난 23일 스포츠경향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박민규선임기자
■2년차, 변하지 않겠다
잘 했다지만 결국 첫 가을야구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년을 달릴 힘을 만들었다. 그래서 KT는 2019년을 ‘절반의 성공’이라고 자평한다.
이강철 감독은 “올해 우리 팀의 성과는 시스템이 갖춰졌다는 것이다. 이제 완전히 정착돼 올해 후반기부터 보여준 그 실력을 내년에는 처음부터 보여줘야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올해 주전이 된 KT 선수들에게도 2020년은 실질적인 2년차 시즌이다. 선발 투수 배제성과 마무리 이대은, 주전으로 올라선 심우준과 김민혁 등이 내년에도 올해의 모습을 이어가는 것이 도약의 필수조건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2년차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령탑의 모습이다.
올해 이강철 감독은 ‘탓’을 하지 않았다. 팀을 만드는 권한도, 그에 따른 책임도 스스로에게 넘겼다. ‘만년꼴찌’로 불리던 KT 지휘봉을 잡은 직후 “올해 관건은 감독인 나의 눈”이라고 했던 이강철 감독은 5강 경쟁권으로 팀을 끌어올려 그 ‘눈’을 입증했다.
패배의식에 젖어있다는 말을 듣던 KT 선수들을 달리게 하기 위해서는 이상과 현실을 잘 섞어 승부에 집중하도록 해야 했다. 심판에 배를 부딪히며 판정에 항의해 모두가 알고 있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깨기도 했고, 창단후 최고였던 7월초의 9연승이 허무하게 끝난 뒤에는 선수들에게 커피와 함께 문자 메시지를 보내 가야 할 길을 강단있게 제시하며 투지를 불러일으켰다. 팀 분위기를 끌어가는 것은 인내와 함께 배운 사령탑의 두번째 요건이었다.
신인 투수 소형준과 트레이드한 백업 포수 허도환 외에 전력 보강은 없는 내년 KT 도약의 열쇠 역시 감독 스스로가 맡고자 한다. 이강철 감독은 “주전 2년차가 되는 선수들이 잘 극복해 3~4년차까지 가야 안정되게 팀의 목표를 정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나 자신이 변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투수 운용이나 선수 기용에 있어 내가 조급해지거나 바라는 것이 많아지면 분명 신뢰가 떨어지고 팀이 흔들릴 것이다. 선수들이 올해처럼만 해주면 내가 더 잘 하는 것이 우리 팀이 올라갈 수 있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진정한 최고가 되겠다
10여년 전 코치 생활 초기에 이강철 감독은 기자와 인터뷰 중 “진정한 1인자가 돼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투수 이강철은 프로야구 역사의 주인공이다. ‘왕조’로 불렸던 1990년대 해태 마운드를 이끌어 통산 152승을 거두고 역대 다승 3위이자 사이드암 최다승 투수로 기록돼있다. 현역 최고 에이스인 양현종(KIA)이 늘 “이강철 선배님 기록에 도전해 영광”이라고 말하는 타이거즈의 레전드이자 프로야구 사이드암의 역사다. 우승도 여러 번 했고 여러 기록도 세웠지만 늘 그 앞에는 동시대의 명투수이자 타이거즈 레전드인 선배 투수 선동열이 함께 했다.
최고의 활약으로 성공의 길을 걸었지만 1인자에 오르지는 못했던 ‘투수 이강철’은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며 진짜 1인자가 되기를 꿈꿨다. ‘코치 이강철’ 역시 성공의 길을 걸었다. KIA에서 시작해 넥센, 두산을 거치며 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우승을 경험했다. 많은 투수들을 조련하고 젊은 감독들을 보좌하며 팀의 성공을 함께 했다. 이제 사령탑으로 성공시대에 첫발을 내딛으며 ‘감독 이강철’은 다시 한 번 10여년 전의 그 인터뷰를 떠올렸다.
이강철 감독은 “감독으로서 가야 할 길이 야구인생의 남은 30%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꿈꿔온 야구인생의 마지막은 진정한 톱에 오르는 것이다. 선수 때 확실한 1인자가 되지 못했으니 지도자로서 진정한 1인자가 한 번 되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령탑으로서 최고로 가는 길은 결국 우승이다. 2019년에 이어 2020년은 그 길로 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강철 감독은 “물론 한 방에 우승할 수는 없다. 내년에는 한 단계 위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지만 우리 팀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 도전할 것”이라며 “2019년을 보내며 가장 감사한 사람은 너무도 잘 해준 우리 선수들이다. 현장에서 이 선수들로부터 ‘실력있는 감독’으로 인정받는 것이 내 또 하나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올시즌 내내 받았던 스트레스가 피부 트러블로 드러나 고생했던 이강철 감독의 얼굴은 지금 말끔해졌다. 여전히 팀의 내년을 고민하고 있지만 스트레스는 없는 짧고 유일한 휴식기, 12월이기 때문이다.
이강철 감독은 “마무리캠프를 마치고 오니 얼굴에 붉은 기가 사라졌다. 아내도 엄청 좋아졌다고 반가워하더라”며 “올해 술을 정말 많이 먹었는데 요며칠 안 마셨더니 얼굴이 더 좋아진 것 같다. 내년에는 술을 좀 줄여야 되는데 혹시 야구가 잘 되면 또 기분이 좋아 더 먹지 않을까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더 나아질 KT와 감독 이강철의 2020년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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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23:30: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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